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소개글:
이 책은 고려대학교 제2·3·4대 총장을 지낸 현민 유진오의 보성전문·고려대학교 35년간(1932-1966)의 회고록이다. 민족의 근대사 속에서 보전과 고대가 걸어온 발자취를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부각한 살아있는 역사적 기록이다. 현민은 교우회의 요청에 따라 〈고우회보(高友會報)〉에 1971년 봄부터 1972년 8월까지 전편을, 1974년 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후편을 연재하여 총 33회 분을 집필했다. 이 글들을 교우회보 편집국에서 모아 《양호기(養虎記)》라는 제목을 붙이고 1977년 초판을 출판부가 발간한 바 있다. 42년 만의 복간 작업은 명순구 현 법학전문대학원장의 기획으로 ‘1905’ 시리즈의 세 번째 권으로 펴내게 되었다. ‘1905’는 보성전문학교 또는 고려대학교와 한국 근대사가 의미있게 교차하는 부분들을 담아내고자 기획된 총서이다. 현민 유진오는 35년 동안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고, 그중 14년(1952-1965)의 기간 동안 총장직을 수행했다. 특히 창립 50주년(1955년)을 기점으로 교풍을 쇄신하기 위한 여러 구상을 펼쳤으며, 교색(크림슨), 교장, 교기, 교가 등을 제정하여 고려대학교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창립 60주년(1965년)에는 한국 최초의 국제학술대회 개최, 60년사 편찬, 대규모논문집의 간행 등 굵직한 사업을 이끌며 고대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복간된 《양호기》를 통해 고대가 일제 지배하의 수난기, 해방 후의 혼란과 좌·우익 충돌, 6·25사변, 4·19의거 등의 굵직한 사건들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반추해 보는 것은 오늘날 고대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도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복간에 맞추어



“195555, 하늘은 맑게 개고 철쭉꽃이 교정을 붉게 장식한 가운데 고려대학교 창립 50주년 기념식은 성대하게 거행되고, 그날 저녁에는 중앙도서관 대열람실에서 내빈, 교직원, 교우 수백 명이 모여 대향연이 열렸다. 고려대학교가 발족한 이래 처음 가지는 성사요, 오래간만에 맞아보는 희망과 광명의 하루였다.”

 

1955년 당시 총장으로서 고려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를 주관한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의 감동어린 소감이다. 玄民35(1932~1966) 동안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그 중 14(1952~1965)의 기간 동안 총장 직을 수행했다. 玄民은 다재다능하여 법률가·교육자·정치가·문학가로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나,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단연 법률가·교육자로서의 玄民과 고려대학교 사이의 인연이다. “민족의 손에 의한 민립대학의 창설을 꿈꾸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가 일제의 방해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안으로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는데 이때부터 보성전문은 뚜렷한 비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발전을 거듭한다. 그때 仁村이 정성으로 영입한 사람이 바로 15세 연하의 영재 玄民이다. 玄民仁村과의 만남을 이 책에서 결연”(結緣)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 玄民의 나이 26세였다. 仁村의 눈에 玄民은 학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당대 최고 경세가의 눈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玄民仁村의 생전·사후 한결같이 仁村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玄民은 재직 기간 동안 고려대학교가 수많은 교우들을 위한 마음의 고향”, 세계와 어깨를 나누는 자유·정의·진리의 전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명확하고 굳건한 토대를 구축했다. 특히 玄民은 개교 50주년을 맞아 고려대학교 아카데미즘의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내외에 선언하기 위해 면밀하게 계획하고 과감하게 실천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날이 개교 50주년 기념일이었으니 玄民에게 195555일이 희망과 광명의 하루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대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이하던 19552월에 仁村이 서거했다. 그리하여 그를 위해 예비했던 고려대학교 제1호 명예박사학위를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초대 대법원장에게 돌렸다. 玄民은 이를 매우 애석해 했으나 街人의 대한민국과 고려대학교에 대한 헌신을 고려할 때 그것 또한 합당한 일이었던 것 같다.

 

養虎記는 단순히 玄民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다. 이 책은 형극 속에서 나서 형극을 헤치고 걸어 나온 고려대학교의 높고() 우아한() 역사를 현장감 넘치게 담아내고 있다. 1905년 대한의 국권이 스러져가던 시기에 미미하게 출발하여 그로부터 114년이 지난 2019년 오늘, 고려대학교가 세계와 어깨를 견주는 학문의 전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귀한 교훈일진대, 高大人에게는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다. 1977년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발간한 養虎記2019년에 복간하게 된 것은 고려대학교로서 매우 기쁘고 중요한 일이다. 종서의 조판 체계와 빈번한 한자 등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이번에 이런 것들을 보정했으니 많은 高大人養虎記를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高大人이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지혜와 영감을 얻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養虎記“1905” 시리즈 제3권으로 복간된다. “1905”는 보성전문학교 또는 고려대학교와 한국 근대사가 의미있게 교차하는 부분들을 담아내기 위한 총서의 이름이다. 고려대학교 개교 110주년을 맞이한 2015년에 제1(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을 출간한 이후, 2(보성전문 시대 교과서 번역사업)의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중에 이 책을 “1905” 3권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1905”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더욱 풍부한 콘텐츠를 담아내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이념적 무기로써 사회주의를 선택하여 치열하게 활동했던 교우(校友)들을 발굴하고 바르게 평가하는 사업도 “1905” 시리즈에 담기기를 바란다. 1930년대 보성전문은 일제의 관학(경성제국대학)과 달리 우익과 좌익이 어우러진 혁신적인 자유주의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품어야 할 대한민국 역사의 다채로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정도는 넉넉하게 품을 수 있을 만큼 충분이 성장했다.

 

비록 복간이라고는 하나 존경하는 玄民 선생님의 글로 구성된 책에 발간사를 적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평생 잊지 못할 크나큰 영광을 얻었다. 이 글이 玄民 선생님의 귀한 뜻과 품격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복간본(復刊本)은 가급적 원본의 표현을 그대로 따랐다. 그것이 복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현재 통용되는 용어와 달라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이해·협조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玄民의 공적과 養虎記의 의미를 인식시켜 주신 고 최달곤(崔達坤) 선생님, 가장 최근에 養虎記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게으름에 일침을 주신 김형배(金亨培)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養虎記복간의 취지에 바로 공감하고 적극적이며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해 주신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의 윤인진 원장님, 김철 과장님, 이무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종서의 원본을 횡서로 전환하는 작업을 정성으로 수행한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이상래 군의 충성스런 헌신에 대해서도 따스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개인적인 시각이기는 하나 養虎記의 백미는 역시 개교 50주년 행사 회고 부분이다. 오랜 기간 그것을 준비했을 玄民에게서 수원 화성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18세기 정조 임금의 모습을 본다. 그 행사는 고려대학교 현대화의 출발이오, 고려대학교의 미래를 기약하는 대사건이었다. 고려대학교를 향한 열정을 구현한 玄民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玄民은 그날의 감격을 맑은 하늘, 붉은 철쭉꽃으로 요약했다. 그래서 해마다 5월 안암 동산은 붉은 철쭉으로 눈이 부시다.

 

20194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명 순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