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 속 흔들리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에너지 시장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87%, 액화천연가스(LNG) 86%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아시아 국가에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비 에너지의 약 8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중 석유 약 70%, LNG 약 20%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높은 에너지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안보를 ‘감당 가능한(affordable) 가격에서 에너지 공급원의 중단 없는 가용성(uninterrupted availability)’으로 정의한 바 있다. 결국 현 상황에서 석유와 LNG 같은 에너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중요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통상 역할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대미 투자 연계한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
에너지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안정적인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셰일 가스 혁명 이후 2019년부터 에너지 순 수출국으로 전환한 미국의 에너지 공급국으로서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자국 내 에너지 수요 증가 등을 이유로 수출 통제 등 ‘에너지 보호주의(energy protectionism)’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 등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언제든 수출제한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통상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로 과거 조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LNG 수출을 제한한 바 있다. 다만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는 예외를 인정해, 한국은 한미 FTA 체결국으로서 수출제한을 받지 않았다. 현 트럼프 정부에서는 그러한 LNG 수출제한이 없으나 자국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해 수출제한 조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통상 채널을 활용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한미 간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15% 관세에 합의하면서 조선,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AI, 양자 컴퓨터 등에서 미국에 3500억달러(약 527조원)를 투자하기로 돼 있는데, 특히 에너지 파트에서 투자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설계해 우리에게도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미국과 15% 관세에 합의하면서 5500억달러(약 828조원)를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2월 18일에 1차 투자 패키지 360억달러(약 54조원), 2차 투자 패키지 730억달러(약 110조원)를 발표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에너지에 특화된 투자 프로젝트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1차 투자 패키지에는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 석유·가스 수출 항만 정비 프로젝트 등이 포함됐고, 2차 패키지에는 원자로 건설, 천연가스 발전 시설 건설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된 원유, LNG 등은 다시 일본에 공급돼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어차피 미국에 투자하게 돼 있는 만큼,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에 사용할 수 있도록 LNG 수출 터미널 건설 프로젝트 등 우리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위해 통상 채널 활용해야
에너지 안보를 위해 미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와 수입을 다변화하는 데 있어서 통상 채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40%에 달한 상황을 반성하고 2030년까지는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REPowerEU’를 2022년 5월 발표하고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EU는 최근 여러 국가와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FTA에 ‘에너지 및 원자재(Energy and Raw Materials)’ 챕터를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 역시 FTA 등 통상 협상을 통해 에너지 및 핵심 자원 확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또한 LNG의 경우 우리나라 수입 구조를 보면 호주 1위, 말레이시아 2위, 카타르가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호주와 2024년 12월 ‘한·호주 녹색경제동반자협약(그린 EPA)’을 체결해 청정 경제 분야에서 무역·투자 확대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포괄적 틀을 마련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주요 에너지 공급국과 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향후 에너지원이 풍부한 국가와 유사한 형태의 협정을 확대해, 에너지 공급망을 더 구조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핵심광물 분야에서 공급망 안정과 다변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미국 주도로 두 가지 형태의 협력 체계가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기존 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발전시킨 ‘지전략적 자원협력 포럼(FORGE)’으로, 현재 한국이 의장국을 맡고 있다. 또 하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하는 핵심광물 가격 하한을 포함하는 통상 이니셔티브다. 일본은 지난 미국과 정상회담에서 이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바 있다. 한국으로서는 핵심광물 다변화, 제련 기업 사업 기회 확대 등을 감안해 해당 이니셔티브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안보 우선해야 할 시기, 원자력 역할도 중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내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다. 에너지 정책은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축 위에서 설계돼야 하지만, 현재 같은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는 공급의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 탄소 중립도 중요한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만약을 위한 비상망도 필요하고, 어떠한 에너지원이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저렴하게 공급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상망과 관련, 일본 정부는 최근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제한 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해제한다고 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하면 석탄은 줄여나가야 할 에너지원이지만, 비상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설비를 유지하는 것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이번 상황은 보여준다. 또한 장기적으로 안정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역할도 중요하다. AI, 전기차,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자력은 저탄소이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수단이다. 에너지 수급 불안은 국민 생활은 물론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 산업 전반과 직결된다.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한 ‘조직적인 에너지 지배구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