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는 미·중 법률… 기업들 동시 준수 리스크 커진다


9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인공지능(AI)·대만·이란 등 핵심 현안에서는 이견이 여전했다. 무역 분야에서는 양국이 각각 300억달러(약 40조7460억원) 규모의 비민감 품목에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11월 10일 종료 예정이던 무역 휴전을 내년 1월 10일까지 두 달 연장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러한 정상회담 이면에서 양국의 법률전이 치열하다. 미국이 제재와 대중국 수출 통제를 확대하는 가운데 중국도 이에 본격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중국은 올해부터 중국 내 기업이 미국 제재를 준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외국제재법을 집행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양국 모두와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의 미·중 국내법 동시 준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법을 따르면, 중국 법을 위반할 수 있고, 중국 법을 따르면, 미국 법을 위반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달러를 쥔 미국, 공급망을 쥔 중국
미국은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바탕으로 달러 결제와 미국 금융 시스템,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강력한 제재 체제를 구축해 왔다. 원래 제재는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비무력 경제제재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미국은 러시아, 이란 등을 상대로 수출 통제와 금융 제재를 묶은 제재 패키지를 독자적으로 가동해 왔다. 특히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삼국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처벌하는, 이른바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금융 제재가 위력적인 이유는 국제 결제에서 달러의 비중이 높고 미국 금융 시스템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특정 기업의 달러 결제를 막으면 그 기업은 사실상 국제 거래에서 배제된다. 중국은 이에 맞서 대항 입법을 정비하고 희토류 등 공급망에서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있다. 8월 27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법을 따르면, 중국 법을 어기게 되는 상황(When obeying an American law means breaking a Chinese one)’이라는 기사에서 미국은 금융을, 중국은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글로벌 기업이 곤경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대항 입법, 실제 집행 단계로
중국은 2021년 미국의 제재에 기업이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반외국제재법을 제정했다. 이 법 제12조는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외국의 차별적 제한 조치를 집행하거나 그 집행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중국은 최근에 시행 규정을 정비하면서, 중국 내 개인·기업·금융기관이 외국 기업이라 하더라도 미국 제재를 인정·집행·준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중국 정유 업체 헝리석화(다롄정유)가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를 매입했다는 이유로 이 회사를 제재 명단에 올리고, 헝리석화와 거래하는 제삼국 기업과 금융기관에도 미국 금융 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는 2차 제재를 적용하겠다고 공표했다. 중국 상무부는 곧바로 5월 2일 헝리석화를 포함한 중국 정유 업체 다섯 곳에 대한 미국 제재를 중국 내에서 집행하거나 준수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발표했다.
금융 분야에서도 중국의 한 기업이 JP모건체이스와 시티은행을 상대로 각각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은행이 미국 제재를 이유로 송금을 완료하지 않아 원금과 이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두 사건의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제재에 따른 금융기관의 송금 보류가 중국에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공개된 중국 법원 판결에서는 싱가포르 선사가 미국 제재를 준수하기 위해 홍콩 회사의 전자제품 운송을 거부하자, 홍콩 회사가 운송 계약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중국 법원은 미국의 제재를 계약 불이행의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상을 명령했다. 미국 제재 위험을 피하려는 결정이 중국에서는 계약 위반으로 평가된 것이다.
8월 24일 미국은 대규모 이란 제재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이란과 특정 물품을 거래하는 다른 국가까지 제재하는 2차 제재가 담긴 ‘경제적 왕따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을 선언한 바 있다. 미국은 이란 정권이 원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전 세계 단체와 개인, 선박을 신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는데, 여기에는 중국인 및 중국 기업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제재를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합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향
한국 기업도 중국의 반제재 조치를 이미 경험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중국 해운·조선업 관련 무역법 제301조 조치에 대응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다섯 곳을 반제재 명단에 올리고 중국 내 기업과 거래를 금지한 바 있다. 미국의 대중국 조치와 관련된 한국 기업도 중국의 대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첫째, 한국 기업은 거래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규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단지 상대 기업이 미국 제재 대상인지 확인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중국 기업과 거래를 중단하거나 송금을 보류하기 전에 중국의 차단 명령, 계약상 의무와 소송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반대로 중국 측 요구에 따른 거래가 미국 제재를 위반할 위험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충돌 가능성이 있다면,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제재 관련 조항과 분쟁 해결 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국과 소통 창구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 기업은 미국 제재 당국과 소통하고 법률 자문을 구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쓰고 있다. 이제는 중국 상무부 조치와 관련 판결도 그에 못지않게 추적해야 한다. 제재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 어느 당국에 어떤 사실을 설명하고 어떤 구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특정 국가에 대한 거래와 조달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고, 거래처와 조달처를 다변화한다고 해서 법률 충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대체 경로가 있다면 충돌이 발생했을 때 기업의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미국의 금융 영향력과 중국의 시장·공급망 영향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대다. 한국 기업의 경제 안보 전략에는 두 나라 법을 함께 읽고, 충돌이 생기기 전에 거래를 설계하는 능력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