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를 생각하면 안암동이 떠오른다고대는 처음부터 안암동에 있었을까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가 1905년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종로였다보성전문은 종로 박동(1905~1918), 낙원동(1918~1922), 송현동(1922~1934)을 거쳐 1934년 안암동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성전문은 1905년 4월 황립 러시아어학교를 빌려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래 사진은 그때의 것으로 추측된다.



1906년 7월 보성전문은 러시아어학교에 인접한 종로 박동 소재 김교헌의 가택을 매입하여 학교 시설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가택 형태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 교육 용도로 변경하여 사용했다. 아래 두 사진은 그때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자리에는 현재 조계사가 위치하고 있다.





1910년 천도교가 보성전문 경영을 인수한 후 1914년에는 김교헌의 가택 터에 교사를 신축한다. 아래 사진은 그때의 것이다. 두 사진의 "ㄷ"자 건물을 신축한 것이다. 건물 안마당에 보이는 나무가 회화나무이며, 이 나무는 현재 조계사 대웅전 앞에 서있다.




보성전문은 1918년 이 교사를 나와 1922까지 낙원동 서북학회 건물을 임차하여 사용한다(서북학회 건물은 그 후 낙원동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되었는데, 현재에는 건국대학교 교정에 복원되어 상허기념관(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음). 아래 사진은 낙원동에 있던 서북학회 회관이다.




 

보성전문을 경영하던 천도교가 1921년 대교구당을 신축하여 현재의 종로 경운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1922년 종전 중앙총부(현재 송현동 덕성여중 자리) 건물 옆에 있던 부속건물을 철거한 후 교육용 건물을 신축하여 보성전문을 입주시켰다. 1932년 인촌이 보성전문을 인수한 당시에도 보성전문은 그대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래는 그때의 사진이다.




보성전문 인수 직후 인촌은 학교 이전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34년 인촌은 안암동에 교사(현재의 본관)를 신축하고 학교를 이전했다. 안암동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법대 학생들은 1984년 법학관(구관)이 신축될 때까지 본관에서 공부했다.




<명순구/고형진/류경선, "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5, 14~25면 참조>